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겪은 오류들을 돌아본다면 바보 같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무지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을 알기에 지금이라도 바로 잡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에 시도해본다. 인간들이 나아가야 할 목표인 길의 의미는 하나님을 닮는 길인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길을 간다고는 갔는데 지금에 와서는 무엇을 위해 가는지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 모두 혼돈에 빠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못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지만 그러한 것들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르므로 그냥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모두 참이 된다고 생각을 했다. 하나님의 능력은 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받는 사람이 참이 아니면 아무리 참이라도 참 의미가 상실되어버린다. 그래서 성경에도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하나님은 참을 주시지만 받는 사람들이 참을 받지 못하는 입장이면 참은 의미가 없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서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오류만 쌓여갔다. 다시 말해 인간들이 하나님의 참을 받기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참이 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참이 되기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성급하게 참이 되려다가 제대로 참의 길도 못가고 오히려 엉뚱한 잘못된 길로 가버린 셈이다.
지금은 참의 겉모양인 비슷한 길로 와버렸다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의 길은 어떻게 가는 것인지 규명이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어정쩡한 참의 길로는 어정쩡한 참을 만들 수밖에 없다. 어정쩡하다는 의미는 이론이나 은사로 해석되는 외형을 좇아간 것들을 말한다. 결국 인간의 목적은 인간인 내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변하고 닮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내가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외형만 닮아진 이유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외형은 닮을 수 있었지만 나는 참여하지 않았기에 나의 내면은 변하지 아니하고 겉면만 닮아진 것이었다.
닮는 방법이 하나님과 함께는 맞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과 함께 본인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지불이 따르지 않았기에 외형만 닮은 셈이다. 바로 오늘날까지 인류가 참이라고 따라온 길은 그렇게 겉면만 참인 어정쩡한 참의 길을 따라와 버렸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만 따라간 여파로 하나님은 물론 모든 것들도 외형만 가꾸는 결과만 가져왔다. 그러한 것들이 참이 될 수없는 이유와 왜 진정한 참이 될 수 없는지 참이 아니기에 올 수밖에 없었던 병폐들을 밝히려고 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첫 스텝은 성령님이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은사에 대한 지식의 결여 때문에 인간의 몸에 받은 은사를 성급하게 사용하여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잘되어 그것이 전부인양 모두 그 길만을 가버렸다. 그렇게 잘못 좇아가는 것이 모두 옳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는 길을 가르쳐 준다고 사람들에게 알게 했으니 모두가 겉면만 닮은 모습으로 갔으며 그로인해 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를 가져 올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사가 귀한 것은 사실이나 아무나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부어주신다. 한편으로는 그 만큼 쉽게 된다는 의미라고 본다. 단지 육체의 특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껴질 뿐이었는데 하나님에게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그것이 모든 것 인양 착각을 해 버렸다.
본인도 그렇게 하나님의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인격이나 됨됨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그들의 말에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들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이라고 아까운 것 없이 바쳤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모습은커녕 날마다 실망은 물론이요, 많은 손해를 당하는 일들도 있었다. 그렇게 은사의 오해로 인하여 파생된 일들은 수없이 많다. 각자가 하나님처럼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내면까지 닮아지지 못하는 은사의 폐단 때문이었다. 은사가 그렇게 착각과 잘못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요인이 무엇 때문일까?
성경에도 기록되었듯이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은 그 빛이 강하여 빛 앞에 인간은 제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것이 육과 영의 접촉이 그 만큼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능력을 접하면 부셔지고 깨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불순물은 하나님의 온전함 앞에서는 당연히 깨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요란하게 깨어져 지금까지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깨어지는 소리도 없이 삶을 잘 영위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대부분 잘 모르는 것 같다.
하나님은 우주를 운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육이 하나님의 속성과 다르므로 인간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님의 속성과 다른 만큼 부셔지고 깨어지는 것은 필수다. 육성인 인간이 신성인 하나님의 속성을 덧입기 위해서 깨어지는 것은 당연하며 웬만큼 깨져서는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이 되기까지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당연하다. 인간 중에도 육의 속성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게 깨지는 것이 정상이요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습이 제대로 닮아지게 되는 것을 은사가 강한 사람들을 통하여 그러한 과정들이 훼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각자 육의 속성에 따라 각자 은사의 강도에 따라 많이 깨지지 않는 사람과 적당한 사람과 은사가 전혀 없어 많이 깨지는 사람의 구분, 그렇게 되는 원인과 그로 인한 병폐들과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첫 번째;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비밀을 놀랍게 알아내어 깨지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깨지고 부셔지는 일이 없다. 그들은 은사가 육체에 많이 나타나는 사람들이며 보통 은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목회자들이나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다. 그들은 처음에 은사의 활약이 대단하게 나타난다. 육의 기술이 너무 능하여 하나님의 음성은 물론이요 모든 것들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기술이 능하여 목회자가 되거나 기도요청이나 예언을 묻는 등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그러한 시기는 아마도 꽤 오랫동안 유지가 될 것이다. 은사가 많이 나타난 만큼 대신 기도나 금식이나 찬양 등 그에 못지않은 수고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귀신이 물러가서 은사를 유지할 수 있기에 그것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노력의 시간도 늘어난다. 대신 유지가 되는 한은 삶 속에서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에 의하여 움직이므로 삶은 무시하므로 고통과 귀신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나 응답으로 살아가므로 현실 속에서 구질스런 과정을 거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웬만큼 삶도 잘살아간다. 한참동안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해주므로 삶을 잘살게 해주며 본인도 잘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듣는 음성은 육으로 듣는 음성이기에 때가되면 한계가 있게 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귀신의 처리가 잘 안되므로 어쩌다 한번은 맞을 수 있지만 갈수록 틀릴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는 귀신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그 시점은 사람에 따라 빨리 오거나 늦게 온다. 한동안은 제법 잘나가고 깨어지지 않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육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오게 된다. 한동안은 버틸지 모르나 결국 육체에 손상을 입어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현상들이 생기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패망의 길을 가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려질 때는 사람들도 알아주고 안와무인이었는데 그때부터는 점점 멀어지고 현실을 모르니 삶도 살아가지 못하고 삶의 형편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들 중 다행히 이성적인 남자들이나 현실감이 있는 사람들은 현실과 접목하여 그런대로 잘 유지 해 나가지만 현실감이 없는 대부분 목회자들은 결국 귀신의 양이 늘어나서 감당이 어렵게 되며 목회나 삶은 더 꼬이고 안 되어 결국 육체에 병으로 나타나 패망의 길을 가게 된다. 대부분 그들의 고통은 육체를 심하게 잘못 사용하여 오게 되었으므로 생명의 길과는 다른 소망이 없는 영원히 고통의 길을 가다가 끝이 나게 된다.
한동안은 깨지거나 부셔지는 일어나지 않는 대신 나중에는 결국 귀신에 의해 정복당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닮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영원히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귀신에게 제발 비껴가 달라고 사정하면서 살아간다. 영원히 그 어떤 것에서 자유 할 수 없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귀신과 고통의 양만 늘어나게 된다.
만약 그들이 생명이 되기 위한 체질이 되기 위해서는 육의 기술을 사용한 만큼 되돌려 놓아야하는데 되돌린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 다른 것이면 몰라도 육에 알알이 박힌 속성을 되돌리는 작업이 쉽지 않다. 육은 길들이기 나름이며 잘못 길들여진 육을 원상회복은 물론 육을 사용한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육이 단련되어 귀신이 쫓겨 가기에 사건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사건을 만나야 사건을 통하여 고통과 귀신을 이기고 생명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과 귀신의 해결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통과 귀신의 양이 많아져서 죽을 때까지 고생을 하다가 가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이름을 휘날리던 지도자들의 경우 그들의 마지막에 병을 얻어 생을 마감하게 되는 현상이 바로 그러한 현상들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생명이 없으니 어떻게 생을 마감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소한 살아생전에 해결 안 된 귀신에 쌓여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그 길을 향하여 가야 할 것이다.
안성자www.true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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